이번 나주 여행의 주 목적은 나주 평야를 둘러보는 것이었지만, 나주를 둘러보니 아직 잠들지 못한 아픈 사연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소중한 우리 조상들의 희생에 한동안 가슴이 벅차올랐다.
고려 현종의 망각, 나주 괘서 사건, 임진왜란 때 첫 의병을 지휘한 김천일의 파병식 등 우리가 나주에서 기억해야 할 역사 1592년 단발령의 원정과 동학의 농민혁명 등.
나주읍성 한가운데에 위치한 금성관이 이곳을 중심으로 주요 관광명소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나주 여행을 시작한다.
조선시대 영빈관이었던 금성관은 고려와 조선시대 지방관청으로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김천일은 의병을 규합하고 파병의식을 거행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도 시민들이 이곳 앞에 모여 주먹밥과 음료수를 나눠주곤 했다.
무심코 둘러보니 여러 문화재 중 하나인 줄 알았는데, 명성황후 때부터 광주민주화운동까지 살아온 유서 깊은 곳임을 알고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금성관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내아 금학헌 목사가 나주에 새로 온 목사가 가족과 함께 묵었던 관사다.
현재는 2~4인 숙박이 가능해 한옥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인기다.
금학헌에서 서쪽으로 몇 걸음 떨어진 서성문은 조선시대 나주읍성의 4대문 중 하나이다.
당시 목사와 마을 사람들, 정부군이 동학군과 싸워 성을 방어했지만 이후 일본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제 산책할 시간입니다.
나주읍성의 ‘고롯’ 거리는 약 8km로, 조심스럽게 걸으며 각 장소의 역사를 느끼기에 좋다.
계곡을 걷다 우연히 나주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60년 넘게 살아온 산증인이자 문화해설가 양순용을 만나 거리 곳곳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들었다.
양순용 문화평론가를 만나기 전, 마을에 남아 있는 돌담길과 흙기와가 400년이 넘었고 귀중한 문화유산이 곳곳에 보존되지 않고 무너져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역주민과 지자체 공무원들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오늘날의 후손들이 이곳을 지나며 소중한 역사를 기렸을 것이다.
내가 지키고자 했던 현장을 지금이라도 만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